본문: 마태복음 16:1-4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개역개정]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개역개정]
서론: 하나님은 시대마다 표적을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시대마다 표적을 주셨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홍수가 표적이었습니다.
출애굽 시대에는 열 가지 재앙이 표적이었습니다.
선지자 시대에는 하나님의 경고가 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가장 큰 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 표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그들은 날씨는 읽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읽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는 잘 압니다.
경제도 압니다.
정치도 압니다.
과학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를 향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놓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제6차 대멸종의 경고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보여주시는 표적일까요?
본론 1: 시대의 표적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들이 무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경을 몰랐기 때문도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한 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종교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보다 권력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이익을 사랑했습니다.
결국 영적 무지가 죄를 낳았습니다.
오늘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문제의 뿌리는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죄에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뿌리는 탄소 이전에 탐욕입니다.
생태계 파괴의 뿌리는 산업 이전에 인간의 교만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창조세계를 정복하라고 하셨지만 착취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그러나 인간은 청지기가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창조주 자리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인류세는 어쩌면 죄가 만들어낸 거대한 거울일 수 있습니다.
본론 2: 시대의 표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의 초청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경고는 언제나 회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홍수 이전에도 120년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니느웨에도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선지자들이 보내졌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회개를 기뻐하십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생태계의 신음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너희는 무엇을 섬기고 있는가?"
"너희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
이 시대의 표적은 두려움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회개의 초청장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회개는 방향 전환입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탐욕의 삶에서 청지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소비의 문화에서 감사의 문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론 3: 요나의 표적이 유일한 희망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왜 요나입니까?
요나의 메시지는 한 가지였습니다.
"회개하라."
니느웨는 회개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나라는 멸망했습니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십니다.
요나는 심판을 예고했지만
예수님은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었지만
예수님은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요나는 살아 나왔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입니다.
새로운 정책 이전에 새로운 창조입니다.
새로운 시스템 이전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십자가입니다.
결론: 시대의 표적 앞에서 우리는 회개할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에는 수많은 표적이 있습니다.
신음하는 피조물의 소리가 있습니다.
무너지는 생태계의 경고가 있습니다.
기후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큰 표적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없느냐?"
이 질문은 단순히 환경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영혼에 대한 질문입니다.
믿음에 대한 질문입니다.
회개에 대한 질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무관심에서 회개하십시오.
탐욕에서 회개하십시오.
창조주를 떠난 삶에서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요나의 표적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십시오.
그때 우리는 인류세의 위기 속에서도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회개하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