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6:1-4 서론 :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정보화 시대, 인공지능 시대, 글로벌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은 지금의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세란 인간의 활동이 지구 전체의 시스템을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과학은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고 생활은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엄청난 대가가 존재했습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고 있습니다. 사막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폭염과 홍수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금을 "제6차 대멸종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단순히 과학자들의 진단에만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시대를 해석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태복음 16:3)
오늘 예수님의 이 질문은 2천 년 전 종교 지도자들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시대의 표적을 보고 있는가?"
본론1 : 시대의 표적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당시 최고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누구보다 많이 알았습니다. 율법에 정통했습니다. 종교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눈앞에 계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종교 체계를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보다 기득권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전통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에는 관심이 많지만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는 일에는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당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는 열심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 구원을 말하지만 피조물의 신음에는 귀를 닫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22)
오늘 지구는 신음하고 있습니다.
숲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강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생명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죄의 결과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지배는 있었지만 돌봄은 없었습니다. 사용은 있었지만 책임은 없었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배자가 아니라 청지기의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의 표적을 분별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 뉴스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론 2: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역사의 목적지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기후 위기를 두려워합니다. 경제 위기를 두려워합니다. 전쟁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역사의 마지막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계 21:1)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무질서하게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종착지가 아닙니다.
종착지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절망을 선포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소망을 선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대상은 인간만이 아닙니다.
온 우주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은 말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십자가는 인간만을 위한 사건이 아닙니다.
만물을 위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우주적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 역시 우주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일도 복음의 중요한 영역입니다.
본론 3: 인류세 시대를 향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은 외쳤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 3:8)
오늘 우리가 회개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무절제한 소비입니다.
탐욕입니다.
편리함만 추구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무시한 삶입니다.
회개는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둘째,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생명을 살리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태아의 생명도, 노인의 생명도, 가난한 이들의 생명도, 멸종 위기의 생명도 하나님께는 모두 소중합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교회 안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셋째,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행진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기술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과학으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 1:8)
성령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실 때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됩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깨우실 때 교회는 창조세계를 위한 중보자가 됩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사용하실 때 교회는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는 예언자적 공동체가 됩니다.
결론: 요나의 표적과 마지막 소망
예수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세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 16:4)
요나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인류세의 위기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답도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환경운동은 한계가 있습니다.
부활 없는 희망은 결국 절망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개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립니다.
우리는 창조세계를 돌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거룩한 행진을 계속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시대의 표적을 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깨어 있는 교회, 회개하는 교회, 생명을 살리는 교회,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