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조로아스터교와 성경: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의 관점에서 본 계시의 독창성

이영순 (Loven) · 2026. 7. 4.

1. 왜 다른 종교와 성경을 비교하는가?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은 묻습니다. "기독교도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와 독창성에 관한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첫째는, 모든 유사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유사성을 곧바로 차용으로 단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이며,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실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과 주변 문화 사이에 접점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비슷한 가보다, 그 의미가 무엇 인가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 문화에 홍수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해서

성경의 홍수 사건이 그저 신화의 반복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문화 속에 남아 있는 홍수 전승은

인류가 공통의 역사적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간직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처럼 다른 종교와의 비교는 성경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이 무엇을 독특하게 계시하는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간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조의 목적

인간의 존재 이유

죄의 기원

구속의 역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연결합니다.

이 통일성은 다른 종교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도 흔적을 남겨 두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음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민족에게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흔적을 남겨 두셨다고 가르칩니다.

 

자연 계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 나니." [로마서 1:20]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를 통해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양심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그 양심이 증언이 된다." [로마서 2:14–15]

모든 사람에게는 선과 악을 분별하려는 양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종교와 문화 속에도

진리의 흔적이나 도덕적 통찰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빛이며,

완전한 계시는 성경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특별계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2]

 

비교의 목적

우리는 다른 종교를 연구할 때

비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조건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의 독창성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며,

복음을 더 분명하게 증언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입니다.

 

2. 조로아스터교와 성경의 역사적 만남

이제 본격적으로 조로아스터교와 성경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등장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종교입니다.

창시자인 조로아스터는 선과 악, 심판과 회복,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종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와 페르시아 제국

기원전 586,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포로 생활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칠십 년 후에 백성이 돌아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12].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리고 그 약속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등장한 페르시아

기원전 539,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을 정복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여

유대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사야는 고레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실 일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사야 44:28].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역대하 36:22–23]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 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방 제국의 왕까지도

자신의 구속 계획 안에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문화적 접촉과 하나님의 보호

페르시아 시대에 유대인들은

조로아스터교 문화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그 문화에 흡수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시를 보존하고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다양한 철학과 사상을 연구하면서도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잃지 않도록 역사 가운데서 백성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 역사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국제 정세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흥망성쇠와 페르시아의 등장을 통해

언약 백성을 보존하시고, 장차 오실 메시아를 위한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따라서 조로아스터교와의 만남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조로아스터교 자체가 아니라, 그 시대를 다스리시며

자신의 구속 계획을 이루어 가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묵상.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무대입니다.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조로아스터교도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역사적 환경을 사용하여 언약을 보존하시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3. 조로아스터교와 성경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의 관점에서 본 비교

성경과 조로아스터교를 비교할 때, 여러 주제에서 유사성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곧 동일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그 안에 담긴 세계관과 구속사의 방향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1. 선과 악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을 우주 안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세력으로 설명합니다.

선의 신(아후라 마즈다)과 악의 영(앙그라 마이뉴)이 오랫동안 싸우며,

인간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에도 선과 악의 대립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창조주 이심을 선언합니다.

[신명기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이사야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악은 하나님과 대등한 힘이 아닙니다. 사탄도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허락 밖에서 독립적으로 우주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원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르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이 한 구절만으로도 성경은 모든 이원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합니다.

 

2. 천사와 악한 영

조로아스터교,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이 각각 조직을 이루어 활동합니다.

성경, 성경 역시 천사들과 악한 영들의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며,

사탄과 악한 영들도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영적 존재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3. 메시아와 구원

조로아스터교, 장차 세상을 회복할 구원자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 성경은 창세기부터 메시아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메시아는 단순한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새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납니다.

성경의 메시아는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시는 왕입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지라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사야 53]

 

4. 죽은 자의 부활

조로아스터교도 마지막에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성경도 죽은 자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목적은 매우 다릅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과 악의 최종 승패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성경에서는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완성되고, 새 창조가 이루어 집니다.

부활은 단순한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새롭게 되는 사건입니다.

 

[이사야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다니엘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에스겔 37] [요한복음 11] [고린도전서 15]

 

5. 최후의 심판

조로아스터교,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도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언약을 완성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사건입니다.

심판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입니다.

 

6. 새 하늘과 새 땅

조로아스터교는 세상이 새롭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경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마침내 완성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마지막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요한계시록 21–22]

 

7. 가장 큰 차이

여기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은 선과 악의 대립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입니다.

성경은 "누가 이기는가?"를 중심으로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는가?"를 중심으로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가지 주제가 흐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언약 안에서 회복하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성하시며,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의 큰 줄기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의 우주적 갈등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합니다.

반면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는 청지기이자 대리 통치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이 언약 질서를 깨뜨렸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언약을 완성하시며,

인간과 만물을 다시 하나님의 통치 아래 회복하십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최후의 승리는 단순히 선이 악을 이긴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가장 깊은 특징이며,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이

요한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되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종교의 책'이 아니라 '언약의 책'입니다. 이 한 문장을 이해하면,

조로아스터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와 성경의 근본적인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4. 왜 성경은 '언약의 책'인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 성경의 독창성

 

1.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길을 말한다.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는 공통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왜 고통을 받는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들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 인간이 위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2.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신 이야기이다.

성경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은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찾아오시는 이야기입니다.

죄를 지은 아담도 먼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먼저 부르셨습니다[창세기 3:9].

이것이 성경의 독창성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3. 하나님은 왜 언약을 세우셨는가?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사람 몇 명을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 26–28]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의 형상을 주시고 세상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언약적 사명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언약의 통치자였습니다.

 

4. 죄는 무엇인가?

죄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언약을 깨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독립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왕을 거역한 반역입니다.

 

5. 예수님은 무엇을 회복하셨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죄만 용서하러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였습니다[마태복음 4:17].

예수님의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6. 십자가는 왜 필요한가?

십자가는 단순히 죄값만 갚는 사건이 아닙니다. 언약을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7. 부활은 왜 중요한가?

부활은 예수님의 승리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새 인류의 탄생입니다. 새로운 통치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 이라고 부릅니다.

첫 아담이 실패한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습니다.

 

8.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단순히 예배 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언약 공동체입니다.

 

9. 만물 회복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은 사람만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통해 만물을 회복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피조물이 탄식한다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1]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끝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 이야기입니다.

 

10. 조로아스터교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것이 오늘의 결론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의 싸움을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누가 이기는가?"를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시는가?"를 말합니다.

 

결론

5. 왜 성경은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조로아스터교와 성경의

여러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선과 악, 천사와 악한 영, 메시아, 부활, 최후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등

여러 주제에서 일정한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이 곧 성경이 다른 종교를 모방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일관된 구속사의 흐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1–2],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셔서

세상을 다스리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1:26–28].

인간의 타락으로 언약 질서가 깨어졌지만[ 3],

하나님께서는 노아, 아브라함, 이스라엘,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며

구속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을 세우시고[ 22:20],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며 하나님 나라를 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만물을 회복하시어[ 21–22]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십니다.

 

이처럼 성경은 개별 교리들의 모음이 아니라,

창조에서 새 창조에 이르는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입니다.

이 통일성은 성경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종교를 연구할 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가운데 일반은총과 자연계시의 흔적을

남겨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 1:19–20].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2:14-15]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특별계시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장 충만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 1:1–2].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따라서 다른 종교와 성경을 비교하는 목적은

성경을 약화시키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가 얼마나 일관되고 풍성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단순한 종교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20]

 

 

참고문헌(예시)

성경신학

  • Biblical Theology — Geerhardus Vos
  • Kingdom through Covenant — Peter J. Gentry, Stephen J. Wellum
  • A New Testament Biblical Theology — G. K. Beale
  • Kingdom Prologue — Meredith G. Kline

조로아스터교 연구

  • Zoroastrians: Their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s — Mary Boyce
  • The Apocalyptic Imagination — John J. Col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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