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ities & Social Sciences Resources

인류세(Anthropocene) 관점에서 본 기독교 신학의 방향(2)

부제: 창조세계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교회의 새로운 사명

서기수 (Reston) · 2026. 6. 20.

III. 전통적 신학 이해의 한계와 인류세 시대의 재해석

인류세는 단순히 환경문제를 제기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창조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 선교론을 다시 성찰하도록 요청하는 시대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 신학의 한계'란 성경 자체의 한계가 아니라, 근대 이후 형성된 인간 중심적이고 개인 구원 중심적인 신학 해석의 한계를 의미한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죄와 구원, 칭의와 성화에 대한 풍성한 신학을 발전시켔지만, 그 과정에서 창조세계와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차원은 상대적으로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인류세 시대는 이러한 신학적 불균형을 회복하도록 교회를 초대하고 있다.


1.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의 한계

① 인간은 창조의 중심이지만 창조의 목적은 아니다

기독교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해 왔다(창세기 1:26-27). 

그러나 일부 해석에서는 이것이 인간을 창조세계의 절대적 중심으로 이해하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성경은 인간이 특별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창조의 목적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로마서 11:36)

창조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다른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의 일원이다.


② 구원은 인간만이 아니라 온 피조세계를 향한다

근대 복음주의는 종종 구원을 '인간 영혼의 구원'으로 제한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훨씬 더 넓은 구원의 비전을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로마서 8:22)

여기서 '피조물'은 인간을 제외한 자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가 죄의 결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장차 하나님의 구속에 참여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을 화목하게 한다고 선언한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20)

이 구절은 신약성경의 가장 강력한 생태신학적 본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의 죄 사함에만 머무르지 않고, 깨어진 창조질서 전체를 회복하는 우주적 화해(Cosmic Reconciliation)를 지향한다.


③ 하나님의 형상은 지배가 아니라 책임이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형상"은 흔히 인간에게 절대적 지배권이 부여된 것으로 오해되었다.

그러나 고대 근동에서 왕은 신의 형상으로 백성을 돌보는 존재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은 특권보다 책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여 창조세계를 정의와 사랑으로 돌보는 존재이다.


2. 영혼 중심의 구원 이해의 한계

① 구원을 천국행으로만 축소하였다

교회는 오랫동안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복음의 핵심으로 강조하였다.

물론 영생은 복음의 중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가장 많이 선포하신 메시지는 '천국' 자체보다 '하나님 나라'였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선포하셨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죽은 후에 가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현재의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새로운 질서이다.


② 하나님 나라는 창조세계의 회복을 포함한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영혼만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 정의와 평화, 그리고 창조세계의 회복까지 포함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 시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이사야 11:6-9)

이 말씀은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가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종말론적 비전을 보여준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을 "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1)으로 묘사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신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종말론은 '세상을 떠나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다.


③ 교회의 선교도 확장되어야 한다

인류세 시대의 선교는 개인 전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복음은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모두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따라서 교회는 영혼구원과 함께 창조세계 보전, 기후정의, 생명존중, 사회적 약자 보호를 하나님 나라의 사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3.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 이해한 성경 해석의 한계

'정복하라'는 말씀은 착취를 허용하는 명령이 아니다

창세기 1 28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근대 산업사회는 이 말씀을 자연을 무한히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문맥과 히브리어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카바쉬(Kabash)'의 의미

'정복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바쉬(כָּבַשׁ)는 단순한 폭력적 정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세기에서는 아직 죄가 들어오기 이전의 창조세계가 배경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혼돈을 질서로 바꾸고, 하나님의 선한 창조 목적에 따라 세상을 관리하고 경작하는 책임을 포함한다.

즉 인간은 창조세계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발전시키도록 위임받은 존재이다.


'라다(Radah)'의 의미

또한 '다스리라'로 번역된 라다(רָדָה) 역시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약에서 이상적인 왕은 백성을 억압하는 폭군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며 약자를 보호하는 목자적 통치자이다.

따라서 라다는 착취적 지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책임 있는 돌봄과 보호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리더십도 이와 동일하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태복음 20:26)

하나님의 통치는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다. 인간이 자연을 다스린다는 것도 결국 섬김과 보호의 방식이어야 한다.


4. 인류세 시대가 요청하는 신학적 전환

이러한 성찰을 통해 인류세 시대의 기독교 신학은 다음과 같은 전환을 요구받는다.

전통적 이해

인류세 시대의 신학적 재해석

인간 중심

하나님 중심·창조세계 중심

개인 구원

우주적 구원과 만물의 화해

천국 중심

하나님 나라 중심

자연 지배

창조세계의 청지기적 돌봄

성장과 개발

지속가능성과 생명의 보전

인간의 권리

피조세계에 대한 책임

 

이러한 전환은 전통 신학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본래 증언하는 창조와 구속의 더 넓은 비전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인류세 시대의 교회는 인간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요한계시록 21:5)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Humanities & Social Sciences Resources 자료실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