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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Anthropocene) 관점에서 본 기독교 신학의 방향(1)

부제: 창조세계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교회의 새로운 사명

서기수 (Reston) · 2026. 6. 21.

강의 개요

  • 강의 목표
    1. 인류세(Anthropocene)의 개념을 이해한다.
    2.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3. 전통적 기독교 신학을 재조명한다.
    4. 인류세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신학적 방향을 제시한다.
    5. 교회의 선교와 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I. 인류세(Anthropocene)란 무엇인가?

1. 인류세(Anthropocene)의 개념

1) 인류세의 정의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Anthropos)이 지구(Earth)의 자연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지질학적 행위자가 되었다는 시대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지질학은 지구의 시대를 자연적 변화에 따라 구분해 왔다.

1 1,700년 전 시작된 현재의 지질시대는 '홀로세(Holocene)'라 불리며, 비교적 안정된 기후 속에서 인류 문명이 발전해 왔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은 더 이상 자연환경의 일부가 아니라 지구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환경오염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와 해양, 토양, 생태계, 생물다양성, 물순환, 심지어 지질학적 퇴적층까지 인간의 흔적이 남을 정도로 지구의 작동 원리를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른다.

2) 인류세 개념의 등장

'인류세'라는 용어는 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대기화학자 Paul J. Crutzen(파울 크루첸)과 인류학자 Eugene Stoermer(유진 스토머)가 처음 제안하였다.

Crutze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은 이제 단순히 자연환경 속에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라,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지질학적 힘(Geological Force)이 되었다."

그의 주장은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의 수동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화산 활동이나 빙하기와 같은 자연현상에 버금가는 규모로 지구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후 기후학, 지질학, 생태학, 경제학, 사회학, 철학뿐 아니라 신학에서도 인류세는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특히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의 원인을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면서, 인류세는 현대 문명을 성찰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3) 인간은 지구 시스템의 새로운 행위자가 되었다

오늘날 인간 활동은 지구 시스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 기후(Climate)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CO), 메탄(CH), 아산화질소(NO) 등의 온실가스 농도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 이상기후, 폭염, 한파, 태풍의 강도 증가 등 기후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대기(Atmosphere)

산업화와 도시화는 대기의 화학적 조성을 변화시켰다. 대기오염물질과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이 증가하면서 인간 건강뿐 아니라 산림과 토양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해양(Oceans)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바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산성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산호초가 백화현상을 겪고 해양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4) 토양(Land System)

대규모 농업과 도시 개발, 광산 개발, 산림 파괴는 토양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고 있다. 비옥한 토양은 감소하고 있으며, 사막화와 토양 침식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5) 생물다양성(Biodiversity)

인간은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Sixth Mass Extinction)을 촉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식지 파괴와 기후변화, 환경오염으로 인해 수많은 생물종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생태계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6) 물순환(Hydrological Cycle)

댐 건설, 지하수 과잉 개발, 도시화, 삼림 파괴 등은 자연적인 물순환을 변화시키고 있다. 홍수와 가뭄의 빈도와 강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4) 인류세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다

인류세는 단순히 기후변화나 환경오염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경제활동, 산업구조, 에너지 소비, 소비문화, 기술 발전, 정치와 경제 시스템까지 포함하는 '문명 전체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인류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 인간은 누구인가?
  • 인간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 과학기술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 무한한 경제성장은 가능한가?
  • 우리는 미래세대에 어떤 지구를 물려줄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더 이상 과학만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과 윤리학, 그리고 기독교 신학이 함께 응답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5) 신학적 의미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인류세는 단순한 환경위기가 아니라 창조질서(Creation Order)의 위기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고 선언하며, 인간에게는 자연을 착취할 권리가 아니라 "경작하며 지키라"(창세기 2:15)는 청지기의 사명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인류세는 인간이 하나님의 청지기가 아니라 자연의 절대적 지배자처럼 행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탐욕과 무한한 성장 중심의 문명은 창조세계를 훼손하였고, 결국 인간 자신도 그 결과를 감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류세는 단순히 과학이 정의한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기독교 신학이 창조, , 구원, 하나님 나라, 청지기직을 새롭게 성찰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II. 왜 이것이 신학의 문제가 되는가?

1. 환경문제는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문제이다

오늘날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는 흔히 과학기술이나 환경정책의 영역으로 이해된다. 많은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일은 과학자와 정치인, 경제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교회는 영혼구원과 예배에 집중하면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을 결코 그렇게 이원론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피조세계(Creation)를 대상으로 하는 신앙이다. 따라서 창조세계의 위기는 곧 신학의 위기이며, 교회가 응답해야 할 영적·윤리적 과제이다.

환경문제는 단순히 생태학(Ecology)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론(Creation Theology), 인간론(Anthropology), 죄론(Hamartiology), 구원론(Soteriology),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인류세는 단순한 환경문명이 아니라 신학적 문명의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2.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소유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단순히 인간의 구원자가 아니라 창조주(Creator)로 먼저 소개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창조는 우연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와 사랑의 결과이다.

창세기 1장은 여섯 번 반복하여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보시며 "좋았더라"고 선언하시고, 마지막에는 인간과 모든 피조세계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31)

여기서 '심히 좋았더라(Tov Meod)'는 단순히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질서에 완전히 부합하는 창조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할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창조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환경파괴는 단순히 숲을 잃거나 대기를 오염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심히 좋다"고 선언하신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3.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인간은 청지기이다

성경은 땅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편 기자는 분명히 선언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또한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시편 115:16)

이 말씀은 인간이 땅의 절대적 소유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도록 위임받았음을 의미한다.

창세기 2 15절은 인간의 사명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두 개의 히브리어 동사는 매우 중요하다.

(1) 아바드(עָבַד, Abad)

'경작하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섬기다', '예배하다'라는 의미도 가진다.

즉 인간은 자연을 섬기듯 돌보도록 부름받았다.

(2) 샤마르(שָׁמַר, Shamar)

'지키다', '보호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착취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보전하라고 맡기셨다.

따라서 성경적 인간상은 지배자(Dominator)가 아니라 청지기(Steward)이다.

청지기는 자신의 재산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따라 맡겨진 것을 충실하게 관리하는 사람이다.


4. 죄는 하나님과 인간뿐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를 파괴하였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은 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단절된 사건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결과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의 타락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모두 깨어졌다는 사실이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게 되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10)

둘째, 인간은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담은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뱀을 탓한다.

셋째, 자연 역시 저주를 받는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창세기 3:17)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땅 자체를 악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때문에 창조세계가 고통받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죄는 인간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 전체를 무너뜨리는 사건이었다.


5. 생태위기는 죄의 구조적 결과이다

오늘날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단순히 산업화의 부산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적 관점에서 생태위기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죄성(Sinfulness)에 있다.

그 죄성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 끝없는 탐욕(Greed)
  • 무한한 소비주의(Consumerism)
  • 자연의 상품화(Commodification of Nature)
  •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주의(Economic Expansionism)
  •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
  • 하나님보다 기술과 자본을 신뢰하는 우상숭배(Idolatry)

이러한 구조적 죄는 개인의 잘못을 넘어 사회와 경제 시스템 속에 제도화되었으며, 그 결과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붕괴, 산림 파괴, 해양오염, 환경 불평등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생태위기는 단순한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영적 타락의 결과이며, 회개와 삶의 전환을 요구하는 신앙의 문제이다.


6. 구원은 인간만이 아니라 온 피조세계를 향한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영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로마서 8:22)

여기서 '피조물'은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과 자연세계를 의미한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주적 화해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20)

따라서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한 개인의 천국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회복하는 우주적 구속(Cosmic Redemption)이다.


7. 인류세는 교회의 신학을 새롭게 질문한다

인류세는 교회에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우리는 여전히 인간만을 위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 하나님 나라는 인간 사회에만 적용되는가, 아니면 온 창조세계까지 포함하는가?
  • 교회는 창조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의 사명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 우리의 신앙은 소비 중심의 삶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절제와 돌봄의 삶을 가르치고 있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는 복음임을 충분히 선포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류세 시대의 교회가 복음을 보다 넓은 창조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실천하도록 요청한다. 결국 생태위기에 대한 응답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청지기적 책임을 회복하는 신학적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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